지리 싱위에 L에서 찾은 전환기 생존 전략

전기차 40% 시장에서 찾은 내연기관 차량 브랜드의 마지막 반짝임


창저우 대운하의 실험

2025년 7월 26일, '지리 중국성 대운하 창저우 무협 음악회'가 열렸다(吉利中国星大运河沧州武侠音乐会). 팔극권 시연자들이 무술을 선보이는 가운데, 지리자동차 싱위에 L이 180도 드리프트를 연출했다.
창저우는 300년간 팔극권을 전승해온 무술의 성지다. 중국 무술 129개 문파의 40%가 이곳에서 시작되거나 전수되었다. 지리가 이 장소를 선택한 것은 문화적 정통성에 대한 계산된 투자였다.
결과는 명확했다. 행사 기간 매장 방문객이 210% 증가했고, 무협 한정판 선택률이 39%에 달했다. 싱위에 L은 2025년 상반년 14.62만대 판매로 전 브랜드 연료차 SUV 1위를 기록했다.

15년 축적이 만든 문화적 자신감

2010년 지리의 볼보 인수 당시, 대부분은 이를 무모한 도전으로 봤다. 하지만 15년이 지난 지금, 지리는 볼보 기술을 단순히 흡수하는 것을 넘어서 자신만의 언어로 재해석하고 있다. 그 상징이 바로 '중궈싱(中国星)*' 브랜드다.

지리는 2014년 기존 다변화된 브랜드들을 재통합하면서 '중궈싱'이라는 새로운 브랜드 정체성을 구축했다. 전기차 전환기를 맞이하며 2021년 이후 '중국의 별'이라는 의미의 이 브랜드명은 단순한 애국주의를 넘어선 변화를 상징한다. 중국 민영 기업 1위로 성장한 지리가 글로벌 기술력을 바탕으로 중국적 가치를 재정의하겠다는 선언이었다. 싱유에(星越) L의 '싱유에(한국에서는 싱위에로 알려짐)' 역시 '별과 달을 넘나든다'는 의미로, 이런 브랜딩 철학의 연장선에 있다.

지리는 기술 습득의 3단계를 거쳤다. 1단계 '복사'에서 볼보의 엔지니어링 원칙을 학습했고, 2단계 '적응'에서 중국 시장에 맞게 조정했다. 3단계 '재해석'에서는 기술을 중국의 문화적 언어로 번역하기 시작했다. 싱위에 L이 "문화의 번역자"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이 3단계를 완주했기 때문이다. 기술에 대한 완전한 이해가 있어야 문화적 재해석이 가능하다.

  • “吉利中国星(Geely China Star)”은 중국 자동차 제조사 지리(Geely)가 CMA(Compact Modular Architecture) 플랫폼을 기반으로 개발한 고급 연료차 브랜드입니다. 주요 모델로는 星瑞(Xingrui), 星越L(Xingyue L), 星越S(Xingyue S) 등이 포함되며, 안정적이고 성능이 뛰어난 CMA 플랫폼을 활용해 차량의 기본 구조와 주행 성능을 향상시켰습니다.

    이 브랜드는 CMA 플랫폼의 단단한 차체 구조 덕분에 높은 충돌 안전성을 자랑하며, 고성능과 고안전성, 고품격의 라인업을 구축해 중국 내에서 합작 브랜드와 경쟁할 만큼 강력한 입지를 확보했습니다.

    시장 성과 면에서 2024년 중국 A급 세단 및 SUV 시장에서 판매 1위를 차지했으며, 연간 판매량이 34.9% 증가해 누적 판매 대수 142만 대를 돌파하는 등 눈에 띄는 성장세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연료차 사업은 ‘中国星 사업부’가, 전기차 및 하이브리드 차량은 별도의 ‘银河 사업부’가 담당하면서 브랜드와 기술을 분리, 전략적으로 운영 중입니다.


전환기 브랜드 전략: 장삼각 허브에서 펼친 내연기관의 감성적 차별화

전기차 대세 속에서 발견한 틈새

중국의 신에너지차 비중이 40%를 돌파한 상황에서 흥미로운 현상이 나타났다. 전기차가 대세가 될수록, 내연기관차를 고집하는 소비자들의 정체성이 오히려 더욱 선명해지고 있다. 25~35세 남성 구매자의 68%가 여전히 '운전의 직접성'을 중요하게 여긴다. 전기차의 즉각적 토크와 달리, 변속기의 기계적 리듬감과 엔진 소리가 주는 감각적 경험을 포기하기 어렵다는 반응이다.

지리는 이 틈새를 포착했다. 그리고 이를 실현할 최적의 무대로 창저우를 선택했다.

창저우라는 전략적 무대의 선택

창저우는 단순한 지방 도시가 아니다. 장삼각(长三角) 경제권의 핵심 허브 중 하나로, 상하이 서쪽 160km, 난징과의 중간 지점에 위치해 있다. 고속철도와 고속도로를 통해 상하이, 항저우, 난징에 2시간 내 접근이 가능하다. 이는 중국 고급차 소비층의 60% 이상을 커버하는 지리적 이점을 의미한다.

더 중요한 것은 창저우가 갖는 문화적 정통성이다. 300년간 팔극권을 전승해온 무술의 성지이자, 중국 무술 129개 문파의 40%가 뿌리내린 곳이다. 지리에게 창저우는 단순한 이벤트 장소가 아니라 문화적 브랜딩의 거점이었다.

궈차오를 넘어선 지역 브랜드 전략

중국 자동차 마케팅의 60% 이상이 궈차오 콘셉트를 활용하지만, 대부분은 표면적 차용에 그친다. 지리의 접근은 근본적으로 달랐다. 형태가 아닌 서사에, 전국적 상징이 아닌 지역적 정통성에 집중했다. 

지리의 내부 조사에 따르면(지리 왕루이핑(王瑞平) 부사장/ 2024년 베이징 모터쇼 등에서 언급 - 당시 스트리밍 방송 정지), 타겟층의 무협 IP 선호도는 68%로 일반적인 궈차오 요소 54%보다 높았다. 2025년 중국에서 무협은 OTT 플랫폼 검색량 상위 3개 장르에 포함될 정도로 현재적 생명력을 갖고 있다. 특히 1990년대생에게 무협은 개인의 자율성과 정의감을 추구하는 정신적 코드로 작용한다.

진정한 차별화는 문화 번역에 있었다. 12.3인치 삼중 디스플레이는 '사방신검진', L2.9급 자율주행은 '천리안', 78% 고강도 강판 차체는 '금종죄'로 명명했다. 자동차 사양을 문화적 상징으로 승화시킨 것이다.

창저우 행사의 즉각적 효과는 명확했다. SNS 노출량 8억 3,000만 회, UGC 콘텐츠 12만 7,000건이 생성됐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이런 문화적 접근법이 만들어낸 장기적 시장 성과다. 싱위에 L은 경쟁사에서 전환한 고객 비율이 28%로 업계 평균 15%의 두 배를 기록하며(내부 영업 보고서 및 MarketInsight 2025년 6월 데이터 - 현지지 재인용 언급), 출시 4년만에 누적 판매 72만 대를 돌파‌(2025년 3월 기준)하였다. 출시 후 꾸준한 판매 신장세‌를 보이며 SUV 시장에서 독보적 입지를 구축 중이다. 

  • 사방신검진(四方神劍陣)

    • 무협적 의미: 동서남북 네 방향에 배치된 검사들이 협력하여 적을 제압하는 진법. 개별 무공보다 협력과 배치의 묘를 중시하는 단체 전술

    • 기술적 번역: 운전석을 중심으로 전방, 좌우에 배치된 12.3인치 삼중 디스플레이가 운전자에게 종합적 정보를 제공하는 시스템. 단일 화면이 아닌 다면적 정보 제공의 협력 효과

    천리안(千里眼)

    • 무협적 의미: 천 리 밖의 상황까지 내다보는 초월적 시야. 예지력이나 통찰력의 상징으로도 해석

    • 기술적 번역: L2.9급 자율주행 시스템의 다중 센서(카메라, 레이더, 라이다)가 운전자 시야의 한계를 넘어 먼 거리의 위험을 미리 감지하고 대응하는 능력

    금종죄(金鐘罩)

    • 무협적 의미: 강력한 내공으로 몸 전체에 보이지 않는 보호막을 형성하는 방어 무공. 외부 공격을 무력화하는 최고급 호신술

    • 기술적 번역: 78% 고강도 강판으로 구성된 차체 구조가 탑승자를 보호하는 물리적 안전장치. 보이지 않지만 확실한 보호 효과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무협의 금종죄와 개념적 유사성


전기차가 대세인 지역에서 브랜드가 생존하려면…

싱위에 L 사례가 제시하는 생존 조건은 명확하다.

첫째, 충분한 기술적 기반이다. 지리가 15년간 볼보 기술을 체화한 과정이 있었기에 무협의 언어로 재해석할 자격을 얻었다. 아무리 탁월한 문화적 번역 능력을 보유해도, 기본적인 기술적 신뢰성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소비자의 마음을 움직일 수 없다.
둘째, 깊이 있는 문화적 통찰이다. 지리는 무협이 현대 중국인들에게 갖는 의미를 정확히 파악했다. 단순한 전통이 아닌 현재진행형 문화 자원으로 접근했다. 창저우라는 무술의 성지가 갖는 역사적 깊이와 장삼각 경제권 내 전략적 위치를 결합시킨 것이다.
셋째, 창조적 번역 능력이다. 기술과 문화 사이의 연결고리를 만드는 고도의 창조적 작업이 핵심이었다. 지리가 보여준 '사방신검진', '천리안', '금종죄'와 같은 번역은 자동차의 기능적 사양을 문화적 상징으로 전환시키는 정교한 작업의 산물이다.
이 세 조건이 충족되면 기존 기술도 새로운 생명력을 얻을 수 있다. 더 나아가 이런 문화적 자산은 전기차 시대에도 브랜드 가치로 작용할 수 있다.


이런 접근법이 다른 시장에서도 재현 가능할까? 몇 가지 원리들은 보편적 적용 가능성을 갖는다. 기술이 평준화될수록 차별화 욕구가 강해지는 '기술 표준화의 역설'과, 글로벌 기술을 로컬 문화로 재해석하는 '문화적 번역의 힘'이다. 미국에서는 '개척정신'과 '자유', 독일에서는 '장인정신'과 '정밀함', 일본에서는 '모노즈쿠리'와 '정교함' 같은 고유한 문화적 가치 체계를 제품에 투영하는 것이 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이 성공에는 중국만의 특수한 조건들이 작용했다. 무협의 현재적 생명력과 창저우의 역사적 깊이, 장삼각 경제권의 구매력 집중, 급속한 전기차 전환이 만든 시장 분화 등은 다른 시장에서 쉽게 재현하기 어려운 고유한 맥락들이다.


저무는 기술의 마지막 반짝임


창저우에서 벌어진 이 실험이 전하는 핵심 메시지는 명확하다. 궈차오 같은 피상적 문화 마케팅을 넘어, 특정 지역의 문화적 정통성과 경제적 영향력을 결합한 진정한 지역 브랜드 전략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더 근본적으로는, 이것이 저무는 기술의 마지막 반짝임을 목격한 순간이기도 했다. 내연기관이라는 120년 된 기술이 전기차라는 새로운 패러다임 앞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고수하려는 마지막 몸부림을 본 것이다. 

역사적으로 기술 전환기마다 이런 현상이 반복되어왔다. 1920년대 라디오가 등장했을 때 신문은 '깊이 있는 사고'의 매체로 자신을 재정의했고, 1950년대 텔레비전이 대중화되자 영화는 '예술적 경험'으로 승화했다. 2000년대 디지털 사진이 보편화되자 필름은 '아날로그적 감성'을 무기로 틈새 시장을 확보했다. 지리의 싱위에 L이 보여준 것도 같은 맥락이다. 전기차의 즉각적 토크와 정숙성이 대세가 되는 순간, 내연기관은 '운전의 직접성'과 '기계적 교감'이라는 고유한 가치로 차별화를 시도했다. 무협이라는 문화 코드를 통해 엔진의 진동과 변속기의 리듬을 '내공'과 '검술'로 승화시킨 것이다.


이러한 시도가 괄목할만한 이유는 단순히 마케팅적 성공을 거뒀기 때문이 아니다. 기술 진화의 필연적 흐름 속에서도 인간의 감성적 욕구는 사라지지 않는다는 점을 증명했기 때문이다. 효율성과 합리성이 지배하는 시대일수록, 비효율적이지만 감각적인 경험에 대한 갈망이 더욱 강해진다. 결국, 창저우 대운하에서 목격한 것은 결국 인간이 기술과 맺는 관계의 복합성이었다. 우리는 더 나은 기술을 원하면서도, 동시에 익숙한 기술이 주는 안정감을 포기하기 어려워한다. 싱위에 L의 성공은 바로 이런 모순적 욕구를 포착한 결과였다.


바꿔 말하면, 기술 전환기에 생존하는 것은 반드시 가장 앞선 기술을 보유한 브랜드만이 아니다. 충분한 기술적 기반 위에서 가장 깊이 있는 문화적 이해와 번역 능력을 갖춘 브랜드들에게도 기회가 있다. 지리의 '중국성' 브랜드가 무협이라는 문화 코드를 통해 완성된 것처럼, 각 지역의 고유한 문화적 자산이 글로벌 기술과 만날 때 새로운 가치 창출이 가능하다는 희망적 신호를 보여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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